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세계사 (문단 편집) ====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17학년도]] ==== * 6월 모의평가 어려운 편이었다. 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수준이 있는 '시기' 문제를 출제했고, 학생들이 주로 관심 갖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출제했다. 16번 문항은 닉슨 방문, 미중 수교의 지도자를 구분해야 했다. 여기에 베트남 전쟁 종전까지 연관지었다. 특히나 현대사에서 시기를 구분하는 문제는 동아시아사에서는 줄곧 나왔으나, 세계사에서는 다소 드문 문제였기 때문에 몇몇 수험생들이 낯설어 했다. 메가스터디 기준으로 16번 문항은 오답률 65%를 기록했다. 또한 8번 문항은 메가스터디 기준으로 오답률 75%의 문제였다.[* 근래 세계사에선 자주 출제되지 않았던 영락제를 출제했다.] 19번 문항 역시 쉽게 접해보지 못했을 이탈리아의 통일과 관련한 문제가 출재됐다.[* 더군다나 이탈리아의 통일에 대한 얘기를 하는 편지를 보낸 사람을 갖다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로 설정해 놓는 바람에 낚인 수험생들이 많았다.] 18번 문항은 유럽열강의 아프리카 지배에 대한 원주민의 반발(줄루족의 저항이라든가. 이번에는 헤레로 족)을 모르면 풀기가 힘들었다. 20번 문항은 브레턴우즈 회의에 대한 문제로 학생들의 관심이 적은 경제사 영역에서 출제했다. 1컷은 '''45'''점으로, 세계사의 응시 표본이 역사 매니아층임을 고려해 볼 때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총 응시자 21,685명 중에서 만점자 수는 사탐 중 가장 낮은 인원인 166명(0.77%). ---- * 9월 모의평가 평이했으나 12번이 등급을 가를 듯 보인다.[* 연도를 정확하게 모르면 틀릴 확률이 높았다. 독일통일 (1871), 남북전쟁 (1861~1865), 농노해방령(1861) 이 세개의 연도. --동아시아사에선 2년 차이도 있었다.(여몽연합 침공 1274, 대월사기 1272)--] 만점을 받았을시 표준점수는 '''71점''', 1등급 원점수는 '''47점'''. (표준점수 '''69점''') ---- * 대학수학능력시험 13번에선 일본 근대사의 순서를 물어보는 문제가 나왔고,18번에는 비교적 지엽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전조약|켈로그-브리앙 조약]]이 출제되었다.[* '전쟁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라는 교과서의 서술을 기억했으면 무난히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오답률 1위를 차지한 9번의 경우 낭트 칙령이 발표된 1598년부터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 사이의 일을 고르는 것이었는데,[* 당해년도 수특에 두 사건의 연도가 정확히 제시되어 있다.] 연도를 몰랐다면 못 푸는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선지가 대부분 비슷한 시기들인 16~17세기였기 때문에 답을 선택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 외에도, 14번의 경우 셀주크 튀르크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료에 딱히 딱 집히는 단서가 없었다. 셀주크 튀르크의 발원지를 모르면 못풀지경... --부와이 왕조마저 안 나왔다면 그야말로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1번인 나폴레옹에 관한 문제의 선지 중에는 수능특강 지도 단 하나에만 나오는 이집트 원정을 끼워놓았다. 망정이지 그게 답선지였다면...] 1등급컷은 48점으로 전반적으로 지옥불 수준까지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능 세계사의 응시집단이 '''진성 역덕'''임을 고려하면 응시자들 수준이 상당히 높은 점도 높은 등급컷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만점자 비율은 1.50% (만점자 333명, 응시자 22196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